베트남 궁중음악 냐냑(Nha Nhac -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궁중음악은 무용과 가극을 아우르는 음악의 한 장르로서, 주로 종교 의식이나 궁중에서 행해지는 의례나 공식연회에서 연주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파생된 냐냑(Nha Nhac)이라는 용어는 호 왕조 이후부터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때로는 일반적인 궁중음악을 의미하는가 하면, 때로는 궁중에서의 특별한 의례를 위한 음악을, 혹은 특정 합주 집단 등의 음악 부서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냐냑의 출현 - 베트남 궁중음악은 17세기부터 생겨났으나 응웬 왕조 (1802~1945) 시기 후에(Hue)의 궁중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궁중 음악은 공식적으로 19세기 초 응웬 왕조의 부흥에 따라 함께 발전하였다. 1947-1948년 즈음, 뜨 꿍 왕후(Madame Tu Cung, 바오 다이 왕의 모친이자, 카이 딘 왕의 부인)이 후에 궁중 음악과 무용을 고수해 나가고자 다시 일부 궁중음악가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였다. 1980년대가 되면서 궁중음악은 베트남 문화부와 지역 정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여, 1990년대에 후에 궁중 음악은 다시 활성화 되었고 후에 궁중 음악은 꾸준히 해외에 소개되어 왔다.
후에 궁중 음악은 종교 의례 음악, 궁중 의식 음악, 궁중 무용, 실내악과 오페라(궁중 전통 가극 – 뜨엉tuong) 등의 장르로 구분된다.
초창기의 후에 궁중 음악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장르를 포함했다
- 하늘과 땅의 신들을 향한 봉헌 의식에 사용되었던 쟈오 냑(Giao Nhac)
- 응웬 왕족 가운데 공적을 기릴 만한 선조, 공자, 응웬 왕조의 문학자들, 국가적 영웅 등의 사원에서 열렸던 숭배의식에 사용된 미에우 냑(Mieu Nhac)
- 탄농(Than Nong), 타인 호앙(Thanh Hoang), 싸 딱(Xa Tac) 숭배의식에 사용되었던 응우 뜨 냑(Ngu Tu Nhac)
- 외교사절의 환영식이나 중요 행사에 사용되었던 다이 찌에우 냑(Dai Trieu Nhac)
- 궁중의 일반 행사에 사용되었던 트엉 찌에우 냑(Thuong Trieu Nhac)
- 귀족들의 연회에 사용되었던 옌 냑(Yen Nhac)
- 왕궁 안에서 사용되었던 꿍 냑(Cung Nhac)
초창기의 후에 궁중 무용은 그 내용이 풍부하여 여러 자리에서 공연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있는 11개의 궁중무용으로는 밧 닷(Bat Dat- 쟈오(Giao), 미에우(Mieu), 싸 딱(Xa Tac)을 비롯하여 역대 왕들이나 공자를 기리는 자리에서 공연), 룩 꿍(Luc cung), 땀 띤(Tam tinh), 밧 띠엔(Bat tien), 찌엔 탕 팟(Chien thang Phat), 뜨 린(Tu Linh), 땀 꾸옥 떠이 주(Tam quoc Tay Du - 왕의 생일인 반터(van tho), 왕의 모친의 생일인 타인 터(thanh tho), 왕의 선친의 첩의 생일인 띠엔 터(tien tho), 수호신이나 요정들을 기리기 위한 의례인 무(Mu), 왕좌를 계승할 왕자의 생일인 티엔 쑤언thien xuan 등에서 공연), 찐 뜨엉 땁 카인(Trinh tuong tap khanh-왕국과 백성의 부강을 기원하는 행사인 뚜(tu) 혹은 응우 뚜언 자이 칸 ngu tuan dai khanh 등에서 공연), 누 뜨엉 쑤엇 꾸언(Nu tuong xuat quan-승전, 왕이 즉위식, 음력 5월 2일, 외교사절을 위한 환영식 등에서 공연), 부 피엔(Vu phien - 결혼식에서 왕의 모친이나 왕후, 시녀, 공주를 위해 공연), 룩 찌엣 호아 마 당(Luc triet hoa ma dang-응웬 왕조 시절 왕의 즉위식에서 푸반러우Phu Van Lau 앞에 서서 구경하던 이들을 위한 공연) 등이 있다.
이러한 궁중 음악 및 공연들에서는 다양한 곡들이 연주되었는데, 국가가 쇠퇴하면서 상당 수의 곡들이 사라져 갔으며 그 노랫말만이 일부 남아있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곡들로는 무오이 반 응우(Muoi ban ngu 혹은 리엔 보 탑 쯔엉Lien bo thap chuong- 팜 뚜엣 Pham tuyet, 응웬 띠에우Nguyen tieu, 호 꽝 Ho quang, 리엔 호안 Lien hoan, 빙 반Binh ban, 떠이 마이Tay mai, 낌 띠엔Kim tien, 쑤언 퐁Xuan phong, 롱 호Long ho, 떠우 마Tau ma를 포함한 10개의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롱 당(Long dang), 롱 응엄(Long ngam), 푸 룩(Phu luc), 띠에우 쿡(Tieu khuc), 땀 루언 끄우 쭈엔(Tam luan cuu chuyen - 비를 기원하는 의례에 쓰이던 음악), 당 단 꿍(Dang dan cung), 당 단 돈(Dang dan don), 당 단 껩(Dang dan kep), 타이 빈 꼬 냑(Thai binh co nhac), 봉(Bong), 마부(Ma vu), 만(Man), 남 빈(Nam Binh)이나 남 아이(Nam Ai) 등과 같은 몇몇 실내음악 등이 있다.
응웬 왕조의 궁중 오케스트라는 왕궁의 의례나 연회의 성격에 따라 참여하는 악기의 종류나 개수가 달랐다. 다양한 종류의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냐냑(Nha nhac), 후엔 냑(Huyen nhac), 띠 쭉 떼 냑(Ti truc te nhac), 띠에우 냑(Tieu nhac), 다이 냑(Dai nhac), 꼬 쑤이 다이 냑(Co xuy dai nhac), 냑 티에우(Nhac Thieu), 밧 엄(Bat am), 띠 쭝(Ty chung), 띠 칸(Ty khanh), 띠 꺼(Ty Co) 등이 있다.
후에 궁중 음악은 수 세기전 형성된 탕 롱(Thang Long) 궁중 음악을 계승하여 그 수준을 더욱 발전시켰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노력이 주목할 만하다.
- 쩐왕조의 띠에우 냑(Tieu nhac)과 다이 냑(Dai nhac) 같은 이전 왕조의 궁중 오케스트라 일부를 유지해 나감
- 레 왕조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음악을 창조
- 탕롱 궁중 음악에서 흔히 등장하는 악기를 그대로 유지,
- 이전시대의 일부 궁중 무용들을 계승하는 동시에 다양화시키면서 새로운 무용들을 창조
- 새로운 형식의 실내 음악인 던 까 후에(Ton ca Hue)를 탄생시킴
- 베트남 기악의 연주실력이나 합주형태의 수준을 향상시킴
- 당 응와이(Dang ngoai)의 “뜨엉(tuong)”을 계승하여 새로운 형식의 뜨엉인 “뜨엉 낑(tuong Kinh-수도지역의 뜨엉)”을 뜨엉 반(tuong van) 형식으로 발전시킴
- 15세기 후기의 레왕조 통치기 동안, 홍득(Hong Duc) 지배기에 활용되던 음조규칙(tone regulations)을 계승하고 음악용어와 이론을 발전시킴
- 배움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당시 탕롱 궁중 음악 분야뿐만 아니라 베트남 음악계 전체적으로 유입되고 있던 외국 음악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베트남화하도록 장려
후에 궁중 음악의 특성이라 하면, 중국과 참파의 문화나 불교, 유교의 영향들을 통합, 수용하고 자신의 문화에 맞게 채화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쳤다는 것이다. 궁중음악은 “뜨엉(tuong)”(핫 보이hat boi) 예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특히 후에 궁중 음악은 그 유형이나, 장르, 악기의 음색과 종류, 연주하는 곡의 구성, 오케스트라의 구성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성과 풍성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렇듯 후에 궁중 음악은 그 ‘다양성’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켜 준다.
후에(Hue) 궁중 음악은 웅장하며,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다. 후에의 공식음악으로써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여러 가수, 무용수들 의해 공연되는 궁중 음악은 멜로디 체계가 다단계로 이루어지며 수준 높은 즉흥연주를 요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후에 궁중 음악은 베트남 궁중 음악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 이것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전해 온 베트남 궁중 음악의 전형이기에, 후에 궁중 음악 자체만으로도 베트남 궁중 음악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후에의 냐냑 궁중 음악은 2003년 11월 7일에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World Heritage Committee, WHC)에서 ‘인류 무형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Masterpieces of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베트남에서는 최초로 등재된 무형문화유산으로, 10년에 걸친 베트남 주정부와 지방정부, 후에 유적보존센터 (Hue Monuments Conservation Centre)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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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왕조의 목판
응우옌 왕조(Nguyen Dynasty) 목판 (세계기록유산)
응우옌(Nguyen) 왕조의 목판은 다음과 같이 세계 유산으로 평가되었다:
응우옌 왕조(1802-1945)의 목판 34,555개는 그 자체가 고전 및 역사서일뿐만 아니라 공식 문헌자료로서 역사 기록에 도움이 되었다. 그것들은 기록적인 가치와 동시에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 게다가 목판의 제작 기법은 베트남의 목판 인쇄 발달과정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목판의 중요성과 높은 가치를 인정한 베트남의 여러 봉건 왕조와 국가 당국은 대대로 이 기록물을 보존하기 위해 힘썼다.
목판이란 나무로 된 판 위에 중국어로 쓴 글 또는 중국어에서 전사된 베트남어가 역 방향으로 새겨지는 것으로, 응우옌 왕조 시대에 널리 알려진 도서 인쇄 방식이었다. 현재 응우옌 왕조의 목판 34,555개는 베트남 국가기록보관부(State Records and Archives Department of Vietnam) 산하의 제4 국립아카이브 (National Archive Center 4, 달랏 Da Lat 의 옛끼에우(Yet Kieu) 2번 거리에 위치)에 보관되어 있다. 이 귀중한 자료는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약 1,935권의 책들에 대한 152건의 표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역사, 지리학, 군사(軍事), 입법, 산문 및 운문, 종교-이상-철학, 언어-문학, 사회정치학, 문화-교육의 9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응우옌 왕조 목판은 후에(Hue)에서 응우옌 왕조의 사료편찬위원실(1820년 민망(Minh Mang) 왕 치세에 설립)이 과거에 활동하던 동안 주로 만들어졌다. 목판에는 공식 문헌과 응우옌 왕조의 역사를 담은 목판 이외에도 고전 및 역사책들도 포함되는데, 이는 하노이(Hanoi)에 있는 국자감 문묘(Van Mieu - Quoc Tu Giam)에서 수집하여 민망(Minh Mang) 왕과 티에우 찌(Thieu Tri)의 치세에 후에(Hue)에 있는 국자감(Quoc Tu Giam)으로 옮겨진 것이다. 1960년 이래로, 응우옌(Nguyen) 왕조의 목판은 달랏(Da Lat)으로 옮겨져 있는 상태이다.
목판은 봉건제 이후 기원하여 베트남 봉건 역사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목판의 대부분은 공식 문서들을 바탕으로 궁정에서 편찬하였는데, 기반으로 하는 공식 문서들은 여러 역사적 시기들을 거치면서 국가 기구들에 의해 주의 깊게 검증되고 관리되었다. 이러한 중요성을 지님에 따라 목판은 봉건 시대의 국보로 여겨졌으며, 허가를 받은 자나 사료편찬실 소속 관리에게만 접근이 허용되었다.
목판의 제작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고난도의 과정이다. 우선 왕이 책을 엮도록 허용하는 칙령을 내리면, 사료편찬위원실의 책임 하에 관련 책들을 연구하고 편집하며 목판을 새기고 인쇄했다. 사료편찬위원실에서는 고서들과 황실 기록들을 연구하여 책으로 엮고, 이를 왕에게 제출하였다. 그 뒤에 원고는 사료편찬위원실로 다시 보내졌고 왕이 제안한 대로 수정된 원고를 정확하게 수정•정리하여 왕에게 올리는 소청과 함께 제출되었다. 원고가 승인되면, 왕의 포고령에 의해 임명된 고관들이 면밀히 통제하는 가운데 목판에 새겨졌다. 이 작업이 완성되면, 목판을 이용하여 책을 인쇄하였다. 책의 인쇄는 오직 왕의 명령 하에서만 가능했다.
사료편찬위원실은 기록 작업을 능숙하게 처리하기위해 숙련된 다수의 조각공이 필요했다. 숙련된 조각공은 나라 전역에 걸쳐 목각으로 유명한 지역 출신으로 골고루 선발되었고, 그 조각 기법들은 전적으로 수작업에 의한 것이었다. 나무판 위에 새겨진 글들은 각 조각공의 온갖 열의를 담고 있었으며, 그렇게 새겨진 목판의 글자 각각은 대단히 섬세하고 예리하다. 각각의 기록은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독특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목판은 역사적 가치 이외에도 예술적 측면이나 능숙한 제작기법 면에서도 가치가 있으며, 베트남의 목판 새김 및 인쇄업의 발달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문서에 의하면 대부분의 목판의 원재료는 감나무와 냐종(nha dong)나무로,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상아빛이 특징인 목재이다. 이런 종류의 목재는 새겨진 무늬의 형태를 보존하기에 적절하며, 수백 년이 흘러도 물리적 상태가 좋은 편이다. 또한 목판을 새기는 데는 배나무와 사과나무가 이용되기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목판 가운데는 귀중하고 희귀한 목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대남일 통지 (다이남녓통찌(Dai Nam Nhat Thong Chi: 위대한 베트남의 통일에 관한 역사)), 대남 실록 (다이남특륵 (Dai Nam Thuc Luc: 위대한 베트남의 왕실 기록)), 컴딘비엣스통지암끄엉뭅 (Kham dinh Viet su thong giam cuong muc: 흠정월사 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越史通鑑綱), 흠정대남회전사례(컴딘다이남호이지엔스레(Kham dinh Dai Nam hoi dien su le: 위대한 베트남 황제들의 통치))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민망(Minh Mang), 티에우찌(Thieu Tri), 뜨득(Tu Duc)과 같은 유명한 왕들이 남긴 시와 문학 작품들도 포함되어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종류의 문서들처럼 공식 문헌이나 봉건 왕조의 역사에 관해 기록한 목판들은 베트남에서도 특별히 가치가 높고 희귀한 기록물이며, 또한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희귀한 기록물이다.
이 기록들은 응우옌(Nguyen) 왕조 시기의 황제와 봉건체제 행정부 산하 기구들의 활동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목판은 신뢰할 수 있는 역사의 원천이므로 관련된 역사 자료를 연구하고 비교하며 검토하는 데 일조하여 베트남 역사 분야의 연구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2009년 7월 29일-31일, 바베이도스(Barbados)의 브리지타운(Bridgetown)에서는 유네스코(UNESCO)의 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회의가 개최되었고, 2009년 7월 30일, 응우옌(Nguyen) 왕조의 목판은 세계기록유산(World Documentary Heritage)으로 공인되었다. 이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Programme) 목록에 베트남의 기록 유산이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응우옌(Nguyen) 왕조의 목판은 베트남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특히 희귀한 기록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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